유럽여행

이탈리아 폼페이는 후손들의 금고로 부활했다

휘처라인 2017. 1. 22. 14:14

2천년 전 최후의 폼페이는 후손들의 달러박스(금고)로 부활했다


지난 11월 11일부터 26일까지 15박 16일의 일정으로 서유럽을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영국 런던 -> 도버해협 해저터널을 건너는 유로스타 열차를 타고 파리로 -> 스위스 -> 이탈리아(5일간) -> 모나코 -> 바티칸 -> 오스트리아 -> 독일 -> 룩셈부르크 -> 벨기에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인천공항

 

먹고 자는 비용을 줄여 가급적 여러 나라를 둘러본다는 취지의 패키지 관광 상품을 골라 떠난 것이지요.

비교적 싼 비용으로 수박 겉핥기지만 숨 가쁘게 촉박한 일정을 극기 훈련하듯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유럽여행은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오신 곳이기에  몇 가지만 올리려고 합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곳에 있는 베수비오 산(Monte Vesuvio)

 

 

차창 넘어 멀리 보이는 산이 문제의 베수비오 산입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찍은 것임.

 

 

 

폼페이 입장권 매표소

비수기의 좋은 점은 줄을 서지 않고 쉽게 입장할 수 있다는 것.

 

 

 

 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음산한 기운이 맴돈다

2천년 전에 저런 건축물이 들어섰다니...........

 

 

 

폼페이 유적지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2천년 전에 세워져 번영을 누리던 도시 폼페이,  이무렵 우리는 한사군 시대가 끝나고 삼국시대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폼페이는 서기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분화구가 터지면서 폼페이(pompei), 스타비아(Stabiae), 그리고 헤르콜라네움 (Herculaneum) 전체가 화산재로 덮히면서 이곳의 운명은 역사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헤르쿨라네움은 62(또는 63)년에 지진으로 심하게 파괴되었고, 미처 복구되기도 전인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매몰되었다.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유골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이 도시의 주민들은 폼페이 사람들과는 달리 대부분 화산재가 쏟아진 방향과 반대 방향에 있는 나폴리 쪽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추정된다 라고 역사가는 말하고 있다.

 

 

 

 

 

 

 

 

 

인도(人道)와 경계석, 차도(馬車道)가 확연히 구분돼 있다.   차도에 하얀 점들은 야광석이다.

 

 

경계석 모서리 곳곳에 뚫려있는 구멍은 마차의 말고삐 끈을 매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번화가

 

 

 

상가나 주택에서 나오는 하수구

 

 

당시의 상점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중앙에 새겨져 있는 남근 모양의 양각(陽刻)은 공창(公娼)으로 가는 길을 알리고 있다 

 

 

 

 

 

 공창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비수기임에도 인산이해로 붐빈다.     온갖 종족이 다 모여 흥미롭게 줄을 서서 다가가고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는데 연령 제한은 없다

 

 

 

돌로 쌓은 담벼락은 여러 해를 두고 자주 보수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은 원래 지진이 잦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가이드는 설명하고 있다.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는 공창 업소 입구로 들어간다.

뒷줄에 떠밀려 들어가야 하므로 빨리 셧터를 누르지 않으면 벽화를 찍지 못할 수도 있기에...

 

 

 

 

 

시간 될 때 번역해 보기로 하고...

 

 

각종 체위의 그림들이 사랑방 입구의 윗벽에 그려져 있는데,  체위당 얼마씩의 단가가 매겨져 있었고, 여러개의 체위를 주문할 수도 있었단다.

 

 

비좁은 침대가 보인다

 

 

 

 

 

 

 

 

 

 

 

 당시의 상수도 파이프라고 하는데, 납으로 만들었으며 높은 지대에 있는 호수에 고인 물의 압력을 이용해 급수한 것이라고 함.

 

 

길가에 만들어진 이곳은, 얼굴의 입을 통해 물이 나오게 한 공동수도

 

 

땅바닥에도 납으로 만들어진 수도 파이프의 흔적이 보인다.

 

 

 

공창 곳곳에 고유번호와 상품 등급, 명품(미모와 테크닉)을 알리는 간판이라고 알려준다.  

 

 

 따로 마련된 유물 전시관으로 들어갑니다

 

 

 

화산이 폭발할 당시 화산재에 묻혔던 사람의 자리에 석고를 부어넣어 만든 형상이 전시되고 있다.

 

 

 

공중 목욕탕의 흔적들

 

 

 

 

 

 

 공중목욕탕은 아궁이식 온돌 형식으로 불을 땠으며 호화롭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큰 도로에 놓인 돌은 건널목이고, 깊이 파인 마차의 바퀴자국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2천년전 당시에도 미닫이 문지방이 있음을 알린다 

 

 

도로 좌우엔 선술집, 빵집 등 상가들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비슷한 원형경기장도 설치돼 있다

 

 

 검투사들의 훈련장

 

 

 

 

 

 

훈련장 주변에 검투사들이 묵었던 방들...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면서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들의 모습들을 도로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매몰된 유적들은 현재 3/5 정도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출구를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사시사철 찾아드는 관광객들이 쏟아내는 돈은 대체 얼마나 될까 였습니다.

입장료가 1인당 11유로이니까 우리돈으로 1만5천원 정도인데

1년에 1천만 명만 잡아도 1천500억원 정도가 되는 셈인데, 대단하네요

 

요즘 유럽은 경기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의 70% 가 이탈리아 것이라고 하니 

이탈리아 전체의 관광수입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인을 포함한 호사가들은 폼베이는 성적 타락으로 멸망했다고 주장하나, 

그 당시나 요즘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봅니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의 차이일뿐.................... 

 

우리도 후손에게 물려줄 관광자산을 하루빨리 개발해야겠어요

 

 

 

오전 11시 20분 경,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들어오기 전에 미리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