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중국, 일본보다 먼저 불교가 전래된 사찰, 한라산 성지 존자암(尊者庵)

휘처라인 2018. 1. 19. 04:55

탐방일자 :  2017년 11월 14일


사찰은 평소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 제주도를 탐방하면서

한반도의 제주도가 중국, 일본 보다 앞서 불교가 전래된 곳이라 주장하는 '존자암' 을 찾았습니다.



존자암 성지엔 아래와 같은 안내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아래 비명(碑銘): 국성지위(國聖之位 ; 나라의 성스러운 자리)



적멸보궁(宮 ;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사리탑)


아래 안내판의 내용,


한중일(韓中日) 불교 최초 전래지(傳來址)로서 탐라국 제6존자 '발타라'존자가 2550년 전 인도에서 모셔온 세존사리탑 입니다.

탐라국 역사와 한국불교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성스러운 성지이오니 경건하게 참배하십시오.  -한라산 영실적멸보궁-


"우리나라 제주도가 중국, 일본보다 먼저 불교가 전래된 2550년 전의 절터" 라는 내용입니다.




존자암에 관해 더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지식백과의 내용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서귀포시 하원동 영실 부근에 위치한 존자암은 『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등의 문헌에 나한(羅漢)을 모셨던 절로 기록되어 있다.

한라산 해발 1,280미터 지점 속칭 ‘볼래오름’ 중턱에 터만 남아 있다가 2002년 11월 복원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존자암의 기록을 보자. “존자암()은 한라산 서쪽 고개에 있다.

그 골짜기에 돌이 있는데 마치 중이 도를 닦는 모양 같다. 속설에 전하기를 수행동이라고 한다.”

지난 1991년 즈음부터 제주 지역의 불교계와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의 불교문화가 제주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고려대장경』 제30권 ‘법주기’에 실린 아래의 기록이다.

“부처님의 16존자(제자) 가운데 6번째 발타라 존자가 탐몰라주에 머물렀다.” 탐몰라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고,

절터가 남아 있는 존자암은 당시의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존자암터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때 건물터ㆍ부도(신신사리 보관 석탑) ㆍ배수시설ㆍ기와 조각ㆍ분청사기 조각ㆍ

백자 조각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존자암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조선시대의 문신인 홍유손(제주목사)이 1490년경에 지은 『소총유고』에는

“존자암은 3성(고양부씨)이 처음 일어났을 때 만들어져서 3읍이 정립된 후까지 오래 전하여 왔다. (······)

4월에 점을 치고 좋은 날을 택하여 3읍의 수령 중에 한 사람을 보내어 이 암자에서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이를 국성재()라고 한다. 지금은 그 제사를 폐한 지 8~9년이 된다”라고 실려 있다.

그 뒤를 이어서 이곳을 찾았던 사람이 김상헌이다. “존자암은 지붕과 벽이 흙과 기와가 아닌 판잣집이며 9칸 집이다. 존자암 근처에는 20여 명이 들어갈 만한 수행굴이 있고, 옛날의 고승 휴랑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고 한 뒤에


“오직 존자암의 스님들만이 처를 거느리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남사록』에 실린 글을 보면 제주의 다른 절들의 중들이 대부분 처를 거느리고 살았던 것과 달리,

이 절은 수행하는 스님들이 머물렀던 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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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존자암으로 떠나겠습니다.


서귀포 중문단지에서 승용차로 30여분,  

한라산 영실(靈室) 탐방로 입구에 내려 존자암을 탐방합니다. 



탐방로 영실(靈室) 이라는 지명이 으스스한 느낌을 줍니다.



존자암으로 오르는 입구의 현수막엔,


민족정기(民族正氣)를 바로 세워 국태민안(國泰民安), 한국불교 최초사찰 2,500년전 탐라국 발타라 존자가 창건

(한라산 영실 존자암) 제주도 문화재 43호 존자암 세존사리탑 문화재 제17호   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지루하더라도 낱말의 뜻을 알아볼까요'


- 불교사전에서 발타라(跋陀羅) 의 뜻 : 산스크리트어 bhadra의 음사(音辭; 소리 말). 십육나한(16 羅漢)의 하나.

                      900명의 아라한과 함께 탐몰라주(耽沒羅洲; 제주도로 이해)에 거주하면서 정법(正法)과 중생을 수호한다는 성자(聖者).


- 적멸보궁(宮) 이라 함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 또는 탑을 뜻함.



이해를 돕기 위해 낱말 뜻을 알고 가겠습니다.



아래 출처 :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불화,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백과사전에서,  나한(漢), 아라한(), 응공(), 응진() = 성인 중의 최고 이상상()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이다. 수행자들 가운데 최고의 이상상()을 말한다. 아라한은 본래 부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후에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위치로 바뀌었다. 수행결과에 따라서 범부()·현인()·성인()의 순서로 구별이 있고, 성인중의 최고를 아라한이라 한다.
세상의 존경을 받아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자()라는 의미에서 응공()이라 풀어 말한다.


또한 번뇌를 끊고 생사윤회를 거듭하지 않는 성자로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이므로, 진리에 상응한다는 의미의 응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6가지 신통력과 8가지 해탈법을 모두 갖추어 번뇌에서 벗어난 부처에 버금가는 성자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나한들은 석가 열반 후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열반에 들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여 계속 속세에 머물러 장차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을 교화한다.


한국에서는 8세기 후반 말세 신앙과 함께 16나한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주로 16나한과 오백나한이 신앙되었는데,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영산전(殿)의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6대제자 또는 16나한·18나한·오백나한을 봉안하였다. 나한전이나 응진전을 따로 건립한 사찰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석가모니불과 나한을 상() 또는 불화로 그려 모시고 있다.


절터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이 날 존자암 스님으로부터 이 사찰이 한반도 최초의 사찰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런 길을 한 30분 정도 오르면 존자암이 나옵니다.




현무암의 한라산은 빗물이 바로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표수가 거의 없지만  가뭄에도 불구,

이곳에선 계곡의 흐르는 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옛날 지표수가 흐르던 이곳이 먹는물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절터였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불교문화가 중국을 통해 험난한 육로로 들어오기 보다는 빠르고 편한 해로를 거쳐오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존자암



멀리 캐니다에서 온 손주들이 기와불사(佛事)의 공덕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적은 글.(오른 쪽 위, 애완견과 고양이 이름도 적었군요)






위 현판 글에서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절터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존자암지(尊者庵址)는 <동국여지승람> 과 <탐라지;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鎭 1594~1665 )> 등에 기록되어지고 있는 사찰로써,

특히 <대장경>과 <고려장경> 범주기에는 석가모니의 제자 열여섯 존자 중 여섯번째 '발타라'존자가 탐몰라주(제주도를 뜻함)에서

불도를 전파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건물터, 부도(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 배수시설과 기와조각, 분청사기조각,

백자조각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2004년까지 존자암지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영궁 (瀛宮  ;   瀛: 바다, 신선이 사는 섬,      宮 ; 종묘, 사당)

영궁의 뜻이 사전에 나와 있지 않아  '신선이 사는 사당' 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여섯 폭의 불화(佛畵)











아래는 고도 1,280m 영실(靈室) 봉우리의 일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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