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금산군의 어느 농원에서 카페모임을 진행하는데

휘처라인 2017. 1. 10. 11:23

산골 마을 ' 복골농원'을 찾아          

2007.04.30. 15:43       

이 글은 이번 일요일 우수카페 '귀농사모'에서 주관한 행사에 참석한 뒤 제가 후기를 남긴 것입니다.


 

 - 아 래 -

복골농원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


이번 4월 서울‧충청산방모임에서는 천안시 ‘허브파라다이스 농원’을 둘러보고 난 뒤 금강(錦江) 유등천의 발원지라는 금산군 진산면 오항리 마을의 오지 ‘복골농원’이라는 곳을 찾아보았다.

이미 우리 카페에 소개되어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농원은 귀농 14년차의 ‘삼기산님’이 경영하는 유별난 곳이다.


금산군에서도 아주 덜 오염된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려 애쓰는 이 곳 마을의 진입로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낼 수 있었다는데 승용차나 트럭이 드나드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대형 버스가 오르기 어려워 우리 일행은 버스를 지방도 아스팔트길옆에 주차하고 걸어 오르기로 했다.

물론 ‘삼기산님’ 댁에서 마련해 준 여러 대의 승용차와 소형 승합차로 오를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산길 따라 걷기를 즐기며 운동 삼아 오르는 현명한 길을 택했다. 


일행은 점심때가 훌쩍 지났기에 허기진 배를 달래며 허겁지겁 콘크리트로 포장된 오르막 산길을 따라 한 20분 정도 오르고 다시 굽이진 내리막길로 잠시 내려가 보니 사방이 꽃동산 병풍으로 둘려 쌓인 아늑한 분지(盆地) 이곳저곳에 낡은 구옥 몇 채가 눈에 띄었다.


집 주변에 즐비하게 핀 금낭화, 이름도 알 수 없는 기화요초로 치장한 산야를 보며 신기한 듯 낯선 곳에 다다른 일행은 마냥 즐거워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우선 먹어야 했다.

미리 차려진 식탁에 주변에 자리잡고  앉아 보니 막걸리가 가득 담긴 여러 개의 오지항아리, 온갖 산야채로 꼼꼼히 만든 뷔페식 비빔밥, 아랫마을 할머니가 정성스레 만들었다는 손 두부,  얼음이 버석버석 씹히는 김장김치를 수북수북 담아낸 접시를 보는 순간 이 댁의 후덕한 인심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어디 이뿐이랴,  흑임자(黑荏子;검은깨)인절미에 콩가루 인절미, 찹쌀 시루떡에 쑥 전병, 별미 중의 별미라는 참죽순 튀김, 머위나물, 돌나물, 돌미나리, 토종닭이 벌레 먹고 낳은 계란 등등...  그야말로 산해진미보다 더 귀한 천연 그대로의 산야진미(山野珍味)를 맛볼 수 있었다.  화학조미료를 절대 쓰지 않고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음식에서 이분들의 고매한 삶의 철학을 느끼게했다.


이처럼 융숭한 점심 대접을 받고 나서야  미리 했어야 할 주객(主客)간의 인사 주고받기가 뒤늦게 진행됐다.

14년째 귀농생활을 가꾸고 사신다는 농장주인 ‘삼기산님’ 내외와 충청산방 관계자, 젊고 아직 총각이라는 마을 이장님, 목하 녹색체험마을을 추진하고 있다는 한국농업경영인회 금산지회 간부님, 노래 제목 ‘오빠는 멋쟁이’ ‘잘 될 거야’ 등을 부르고 지금은 신곡을 준비하고 있다는 가수 신우철씨도 특별 초대되어 소개됐다. 

농장주인 그의 주변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짐시 쉬고 난 뒤 삼기산님의 걸어온 발자취와 귀농생활이야기, 농촌에서 살아남기 강의도 숨 가쁘게 이어졌다.

농대 진학이 꿈이었으나 인문계 학부를 나와, 한 때 무역 일로 세계 80여개 나라를 주유천하 하면서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선진 농업기술을 익히기도 했다던 그는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누비기도 하는 등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아내 그리고 식구들과 떨어져 살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일밖에 모르는 가장의 비장함을 옆에서 지켜보며 격려해 주고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가족사랑을 바탕으로 이룩해 낸 참 일꾼, 일을 스스로 찾아 즐겨할 줄 아는 이 시대의 참 농업인, 옳다고 믿는 일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해 내는 뚝심, 지역 아마추어 바둑협회도 이끌고 있다는 팔방미인 재주꾼, 허물어져 가는 구옥의 풍모를 살리면서 리모델링을 손수 하고 있기도 한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소득창출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는 것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아무 일 도 할 수 없다는 뜻인데. 귀농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가 짓고 있는 주작목(主作目)은 장뇌삼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 것과는 다른 상품을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일교차가 커서 맛이 뛰어나다는 오디와 감, 고추장 된장 등 장류(醬類), 호박고구마, 콩, 깨, 고추 등을 단골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단다.

저 멀리 산비탈을 가리키며 겨울철이면 천연 눈썰매장도 할 수 있다는 그는 틈나는 대로 이곳에서 전통 음악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농악 사물놀이 지도와 체험도 병행한다 했다.


다음 프로그램은 산야초 박사라는 분의 친절한 지도로 우리일행은 주변 산야로 흩어져 2시간가량의 ‘산나물 익히기’ 견학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강의장으로 돌아와 보니 식탁엔 잘게 썬 도토리묵, 김치무침, 김과 양념장으로 만든 “묵밥”을 차려주셨다. 환상의 맛이었다. 서서 먹는 이, 먹고 또 먹는 이, 입 주변에 음식을 묻혀가며 우리 일행 모두는 양푼 그릇을 깨끗이 비워 냈다.


강의에 앞서 이 땅을 개간하면서 부산물로 얻어진 칡을 달여 만들었다는 칡즙이 돌려졌는데 이 맛은 칡맛 외에는 아무 첨가물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칡맛 그대로였다.

 

다시 ‘삼기산님’의 장뇌삼 영농체험 강의가 이어진 뒤, 멀리 논산에서 천마 재배를 하신다는 ‘천마지기님’이 강의를 하시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당도 했다.  

현재 교직에 힘쓰면서도 천마재배를 누구보다 열심히 경작하며 얻어낸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시는 모습에서 소탈함과 정직함이 느껴졌다.  이 분이 천마재배를 위한 교재 A4용지 한 장을 일일이 코팅하여 만들어 주신 성의에 만족하며 감사한다.  이 분이 나눠 주신 선물용 천마즙을 한 봉지씩 나눠 먹고 난 뒤 편두통이 삽시간에 사라졌다는 일행도 목격됐다.


벌써 시간은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우리 전통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3명의 여성국악인이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와 일행 앞에 나타났다. 

이들이 이번 행사를 맵시 있게 장식해 줄 마지막 순서, 판소리 연주를 위해 온 귀중한 분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강의장 뒤편 언덕 맨땅위에 깔아놓은 둥글고 커다란 짚멍석 위에 작은 북이 올려졌고 이내 이들 3인방의 판소리 가락이 산골에 울려퍼질 때 마다  일행의 박수소리도 힘차게 메아리쳤다.  어느덧 깊은 산골의 차가운 냉기는 옷깃을 스며들고 옅은 햇살은 점차 서산 넘어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오지의 숲 속에서 국악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단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작은 북 장단과 추임새에 맞춰 여러 곡이 번갈아 연주되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부채를 휘두르며 열창한 ‘수궁가’ 뿐이다.

유네스코가 자발적으로 오랜 연구 끝에 우리 판소리를 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악의 우수성은 입증 된지 오래다. 

이 ‘수궁가’가 이날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일행은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토종닭들도 모두 제집을 찾아 올라앉았다.

경계철망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자유롭게 방사(放飼)되고 있는 여러 가축들도 이들과 함께 자유함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삼기산님의 가정과 농원에 한없는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해주신 마을의 리더, 충청산방의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번 모임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신 서울산방장 '원하나님', '조은여시님'을 비롯한 모든 스텝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서울에서 일취월장 /서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