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추억
종익친구가 난로와 벤또 얘기를 꺼내니까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는군
그 옛날, 그러니까 1958년쯤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서대문에 있는 인창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선친이 하시던 사업의 실패로 우리가정은 풍전등화 였었지
우리 5남매중 장남인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이 때 얻은 첫 직장이 '인쇄소'
당시 문선반(文選班)의 시다로 잔 심부름을 했었고 여기서 받는 꼬리 월급으로 입에 풀칠을 했었지.
이곳에선 '부부' 라고 하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요즘말로 엽기적 성문제를 다루는 잡지였기에 몇번인가 정간을 당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는군
인쇄소 직원들은 누구 할것 없이 점심 먹거리로 두꺼운 양은 벤또 아니면 김밥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지고 왔는데 겨울철엔, 건물 2층 마루바닥에 연탄난로가 여러개 있어서
싸 가지고 온 도시락과 깁밥을 서둘러 올려 놓곤 했는데 나는, 신문지가 새까맣게 타서 김밥에 엉겨 붙은걸 한 1년동안 꾸역 꾸역 먹었지요 이 일이 있고 부터 지금까지 난, 김밥을 피해 다녔구먼, 지금까지도
이상,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좀 해 봤소이다. 유성 서진원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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