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소백산의 겨울

휘처라인 2017. 1. 8. 18:05

소백산의 겨울


2005.03.07. 14:38 


      

 

어제는 뿌리치고 떠나려는 겨울을 붙잡아 보려고

이 겨울에 마지막이 될 설경(雪景)도 볼겸

알던 사람의 권유로 작은 산악회를 따라 소백산엘 갔었다


아침 7시, 관광버스에 오른 23명은 15,000원씩의 회비를 건넸고

회장 과 총무의 인사가 있은 후 이내 소주잔이 돌려졌다

젊은 여인은 멸치볶음과 여러 산나물이 담긴 팔각쟁반을 들고 다니면서

교태와 유혹의 눈빛에 안주를 섞어 사내들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전날 저녁에 먹었던 술이 아직 가시질 않아 사양을 거듭했으나

강요되는 술잔을 받지 않는 방법이 없어 먹는 시늉만 하고 물잔에 쏟을 밖에 없었다

관광버스를 타면 언제나 그러하듯

한마디 양해도 없이 유행가 테입을 메가톤급으로 틀어 대곤 한다

알 수 없는 가수의 트롯• 맘보• 차차차 메들리는 고막을 찢는 듯 했고

아줌마와 아저씨들은 가운데 통로로 나와 온몸을 사정없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얼마후 용인휴게소에 들이닥친 버스는 아침 식사용으로 주최측이 마련한

온갖 콩과 경단을 듬뿍 넣어 만든 호박죽통(군대 짬밥통과 흡사한) 그리고 

김치와 밑반찬들을 싸늘한 아스팔트 바닥에 즐펀하게 늘어 놓았다

 

얼핏 버스 밑바닥의 짐칸을 보니 소주가 3박스, 과일과 족발을 비롯한 안주류가 즐비했다

이 모두가 회장의 사비(私費)로 준비한 것이라 했고

뷔페식으로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했다. 참으로 인심 후한 산악회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잔디밭 경계석에 걸터앉은 일행은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퍼 담아 주는

호박죽을 두그릇씩이나 비웠다. 음식 맛도 좋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기 전, 그러니까 오후3시 까지는 점심을 먹을 수 없다”는 총무의

안내 설명이 있었기에 더욱 앞다퉈 든든히 먹어 두어야 했다

손맛과 정성이 느껴지는 음식은 까다로운 미식가들도 흡족해 할 만한 수준이었고 양도 푸짐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음식을 장만하고 퍼다준 아주머니는 유명한 ‘소머리 국밥집’을 30년간 경영해 온 회원이라 했다


중앙고속도를 따라 풍기 I/C로 향하는 동안, 고막을 찢을듯한 노래소리가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길 좌우로 펼쳐지는 설경만을 만끽하고 있었다


희방사(喜方寺)입구의 버스주차장에 내동댕이 쳐진 일행들 가운데 

얼굴이 검은 어떤 이는 술병과 안주를 베낭에 쑤셔넣기도 했고

어느 어르신은 지팡이에 의지한채 “그냥 버스에 남아 있겠소” 했다 


이곳 희방사는 다른 절과 달리, 절로 오르는 길은 차량이 올라갈 수 없는 가파른 길이었다

철계단을 따라올라 희방폭포를 지나고, 구름다리를 여러번 건너면서 올라간 절터엔

커다란 법당을 새로 짓고 있었고, 기와 1장에 1만원씩 기와불사를 접수하고 있었다

무인 접수대이다

테이블에 놓여진 복전함(福錢函)에 돈을 넣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의 나라현에 있는 세계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東大寺?)에 들렸을 적에

돈주고 산 기왓장에 소원을 적어 넣었던 일이 떠 오른다 


잘 다듬어진 희방사엔 조용함이 이를데 없었고 스님은 젼혀 보이질 않았다

꽤 커다단 동종(銅鐘)도 매달려 있는데, 아마 화물용 헬기가 들어 올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절에서부터 정상부근의 연화봉(蓮花峯)까지는 아이젠이 있어야 했는데

오르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절터에서 배낭에 든 술과 안주를 꺼내 놓고 있었다

난 또다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아 아이젠을 힘껏 조여 달았다


히뿌연 안개숨을 불규칙적으로 토해 내고 있는 나의 숨소리는 남들보다 훨씬 크게 들려왔다

힘겹게 연화봉에 오르기는 했어도 그 감격은 잠시뿐, 무릎 연골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요즈음, 통증이 느껴져 빨리 내려가고만 싶었다

유서깊은 사적지와 문화유산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하산할 때 너무나 좋은 볼거리가 눈에 띄었다

희방사 아래쪽에 희귀식물인 ‘만명통치의 약초’ ‘ 신이 내린 약초중의 약초’ 라고 불려지는

겨우살이⌡군락을 발견한 것이다

커다란 교목(喬木)가지에 마치 까치집과 같은 모양을 하고 기생하는 ‘겨우살이’는 그 푸르름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무색케 했다


아마 이곳이 절터의 국립공원인지라 심마니 약초꾼들이 손을 대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작년 12월 인터넷으로 알게된 약초동호회(www.sanyakcho.com) 의 초청으로 태릉근처의 뷔페식당에서 산삼주(회장이 직접 담근, 진짜산삼이 들어있는 술병)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소주잔으로 서너잔씩 차례가 왔고, 병에 남은 산삼도 버리기 아까워 갈기갈기 찢어 나누어 먹었다.    다음 날 인터넷 사이트에 실황 사진이 올랐고 얼굴이 너무 뻘겋게 나온 나는 남에게 알리기가 부끄러웠다

이들의 약초에 관한 지식과 경험은 심마니를 능가하는듯 했다

이들에게서 듣는 정보와 경험담은 너무나 흥미롭고 다채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나는 평소 약초에 관해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이 때 이들에게서 ‘겨우살이’와 ‘곰보배추’에 관해 흥미롭게 설명을 들었기에 머리 깊숙히 각인되어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위에 적은 사이트에 접속하시거나, 위 약초에 대한 검색을 해보시면 수많은 자료들을 볼 수 있고  가히 그 희귀함과 효능에 감탄할겁니다)

‘겨우살이’ 1개도 보기 어려운데 수십여개의 군락을 보다니...

이 군락이 그대로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산하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침에 제대로 먹지 못했던 술을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에서 땀을 빼고난 내 몸둥아리는 술을 마구 당기고 있었다

아침에 고막이 찢어 질듯 했던 메들리는 그대로 이건만

어느덧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으로 변질 돼 가고 있었다

통로에서 흔들고 있는 여인을 향해  흐느적거리며 다가간 나는

게슴츠레한 눈을 마주한채  간교한 나의 손끝은 이 여인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애꾸는 동네에선 두눈 갖은 사람이 잘못된 것이야 ” 외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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