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이 일깨워 준 나혜석 얘기, 다시 이어집니다. 후손이 없을 줄 알았던 나혜석... 그러나 최근 연합뉴스에서 나혜석을 다룬 기사.....눈물겨운 사연이 있어 아래에 펌했습니다.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9)의 타계 60주년에 즈음해 나혜석의 둘째 아들인 김진 전 서울대 교수가 쓴 나혜석 이야기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해누리 펴냄)가 출간됐다.
국내에 나와있는 기존의 나혜석 관련 책들이 그의 작품이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라는 나혜석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나혜석의 이야기 뒤에 가려진 김우영과 어머니를 평생 원망하며 살아야 했던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나혜석이란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던 저자는 세월의 흐름 앞에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고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고백한다.
저자가 만 네 살이었던 1930년 11월 나혜석은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최린과의 염문 때문에 남편인 김우영과 10년 만에 혼인관계를 청산했다. 김 전 교수는 이후 숙부의 집에서 자라며 숙부와 숙모를 친부모로 알고 자라야 했다.
저자가 다시 어머니를 만난 것은 그 후 10년이 지나서였다. 그가 다니던 대전중학교 학교 복도에 불쑥 나타난 남루한 옷차림의 늙은 여인은 "내가 네 어미다"라는 말과 눈물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후 나혜석은 다시 아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들은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쳤고 끝내 행려병자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 나혜석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낯설게 나타났다가 그냥 없어진 그런 사람, 서 있었던 복도가 내게 유일한 그의 존재에 대한 증거라면 그가 나의 생모라는 세상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미약한 그 증거에 대해 확인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낯설게 나타났다가 그냥 없어진 그런 사람'은 평생에 걸친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나혜석 사건 이후 아버지 김우영은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잃어갔다.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던 그에게 변호 수임은 완전히 끊겼고 당시 삼천리에 게재됐던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엔 그의 이름이 수없이 거론되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반갑지 않은 관심의 눈길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김우영은 1957년 회고록을 냈지만,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을 나혜석의 이름은 회고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나혜석이 죽은 뒤 만년에 나혜석과 절친했던 일엽스님의 아들 일당스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혜석이 자식을 위해 수덕사에서 불공을 드리던 모습과 자식을 만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모습을 전해 들은 아들은 한바탕 눈물을 흘렸고 행려병자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나혜석의 비참한 말년을 상상하며 가슴 아파한다.
서울대 법대 교수와 캘리포니아 웨스턴 법대 교수 등을 지낸 뒤 정년 은퇴하고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김 전 교수는 "고백하건대 나는 생모가 나혜석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면서 "젊어서 펄펄 뛰게 미워했던 사람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용서할 수 없다고 별러왔던 사람이,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덜 미워지고 혹은 가물거릴망정 용서의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은 나이 탓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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