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의 친구를 못잊어
풍산의 요즘 활약상을 보니 숨이 가쁘군, 혈기왕성한 모습 아주 보기 좋아요 주문진 횟집에도 다녀 왔다고 하는데, 나는 주문진 하면 금방 떠오르는 친구가 있지, 혹 우리친구들 중에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학교 동기이며 3학년때 주간학급으로 옮긴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름은 신종남, 수업이 시작되기 전 이면 칠판에 만화(달리는 말)를 그리곤 했는데 그 수준은 전문가 뺨치는 실력 (당시 세간에 많이 알려진 만화가 '신동우' 신동엽' ? 씨의 문하생으로 공부한 일이 있었다고 했지) 난 이 친구에게 만화 수업을 계속하라고 권해 보았지만 당시엔 만화가가 배고팠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거절을 하더군, 요즘에야 '에니메이션 스쿨'도 있지만...
때는 바야흐로 군사혁명 이듬해 이니까 아마 1962년쯤으로 기억되는데 이 친구를 처음 사귀게 된 것은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에 있던 '시립도서관'(?) 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이 친구의 소식이 끊어졌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알 길이 없구만.
난 지난해 여름, 주문진 해안가 어물시장에 관광버스가 잠시 정차했을 때에도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개인별 전화번호부에서 '신종남' 이란 이름을 찾기 바빴지, 혹시 지금도 그의 홀어머니가 계셨던 주문진에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쌓아 놓은 추억이 하도 많아서...
<재학중 일때> 여름 휴가철이면 이 친구와 털털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서울서 주문진까지 서서 갔던 기억, 차멀미를 심하게 해 고생했던 일, 주문진 바닷가에 자리잡은 이 친구의 집은 홀어머니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식당이었는데, '오징어'라는 생선으로 10여가지의 반찬을 만들어 내 놓으시던 일. 밤 바닷가의 '오징어 건조장' 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보고 놀랬던 일. '통기타 하나 동전 한잎' 만 가진채 구경한 설악산, 아스팔트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던 일.
이 친구는 아버지를 6.25 동란 때 잃은것 같았고 어머니는 북한 말씨를 썼던 것으로 보아 실향민으로 추측된다. 그러니 남쪽에 일가친척이 있을리 없지 않겠는가? 식당 일로 근근히 생활하시는 홀어머니는 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서울에 유학 보내 놓고 가슴 졸이며 사시는 듯 했고. 형편이 어려워 이 친구는 용돈도 제대로 얻어 쓰지 못하는 처지였다
<고교 갓 졸업후> 원효로 숙대입구 2층집 다다미 방에서 혼자 자취를 하던 이 친구는 일 자리를 얻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재주가 많아서 인지 연예인이 되려고 기타연주와 팝송, 연기 학원에서 얻은 연기입문 교과서를 들고 다녔고, 눈 쌍꺼풀을 만들려고 빨래집게와 같은 화장 도구로 눈꺼풀을 집어 매달고 잠을 자기도 했다.
엄동설한, 싸늘한 2층 다다미 방에서 이 친구와 난 기타합주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내가 통금시간이 넘어 집에 가지 못하면 아침에 출근할 나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허리띠로 감아 둘둘 말아서 만든 침낭에 나를 잠 재우곤 했었지, 내가 잠을 자다가 잠시 눈을 떠 보면 이 친구는 잠도 안 자고 책상앞에 앉아 무얼 극적이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긴긴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당시엔 내가 철부지여서 그랬던지 나에 대한 이 '처절한 배려'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 친구가 했었던 '나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와 마음의 상처로 남을 지경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이 친구는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이태원 집에 들려 우리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나의 겉 옷을 빌려 가기도 했다고 제대후에 전해 들었고, 얼마 후엔 이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 이태원 집에 들려 나의 어머니에게 외아들 신종남이의 행방을 묻기도 했다 한다. 이 친구와 얽힌 얘기는 하도 많아 다 쓰기 어려운데, 이 친구를 찾아야 한다는 나의 소망은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강열해 진다. - 서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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