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쇼 실황중계
디너쇼 실황(05. 12. 23) 모처럼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온 듯 거리 곳곳엔 활기가 넘치고 성탄과 세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면서.... 우린 오늘저녁 ‘페티김 디너쇼’를 보기 위해 남산 서쪽 밑에 자리 잡은 ‘밀레니엄 서울힐튼 컨벤션센터’로 향했다. 예약된 대로 호텔 후론데스크에서 1박2일의 이른바 ‘스위트 패키지’ 고객등록을 마친 뒤 출입카드와 각종 서비스티킷을 받아 들고 2030호 슈트룸(Suit Room)으로 안내되었다. 유리창 바깥 저 멀리 어둠 속엔 조명으로 비춰진 남산의 케이블카와 하늘로 치솟은 ‘남산 N타워’의 자태가 팔등신 미녀의 몸매보다 훨씬 빼어나 보였다. 간단한 여장을 풀고 공연이 열리게 될 컨벤션센터로 내려가기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1층 로비에 내려서니 5층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였고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이들 모습, 여기저기 쌓아놓은 외국 관광객들의 커다란 가방도 눈에 띄었다. 공연장 통로에선 긴 동물 털가죽코트를 걸쳐 입은 유한마담들이 공연 티켓을 구하려고 서성대고 있었다. 입구 쪽으로 들어 가다가 공연장에서 빠른 걸음으로 홀로 빠져나오고 있는 뜻밖의 사람, H그룹의 회장과도 눈이 마주쳤다. TV에 자주 나오는... 그동안 ‘나훈아 디너쇼’니 무슨 ‘디너쇼’는 TV에서 잠간 본 것이 전부였지 사실 이 나이 되도록 디너쇼 구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민임을 자처하고 살아온 나일지라도 이러한 공연을 못 볼 것도 없지만 애써 볼 일도 아니라고 여겨왔다. 그동안 무슨 디너쇼를 한다는 공연장에서 광란하듯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이질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 관람 역시 자발적 관람이 아닌 예비 며느리의 강추에 등 떠밀려 나왔는데 어딘가 모르게 느끼한 계층(?)의 면면이 드러나는 듯 했다. 우린 '테이블 번호 47R' 이라고 적힌 입장권을 내밀고 47번 테이블로 향해 걸었다. 6시30분부터 시작되려면 아직 20여분이 남았으나 3분의 1정도가 이미 입장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10명(5쌍)이 앉을 수 있는 타원형테이블이 약 150여개, 그러니까 1,5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제법 큰 규모이다. 테이블위엔 튤립모양으로 접힌 손수건, 양식접시들, 삼지창과 칼류의 연장들, 그리고 촛불시위에서 쓰이는 종이컵에 끼어 넣은 양초 등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찾아 앉은 47번 테이블엔 벌써 40대 남자외국인1명과 한국인 파트너,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는 40초반의 여성 1명, 50대 부부1쌍과 함께 7명이 앉아있었는데 잠시 뒤 정장을 차려입은 훤칠한 키의 50대 초반 남자2명이 뚜벅뚜벅 걸어와 앉으며 대뜸 우리 쪽에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한 테이블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들의 몸가짐과 말씨는 매우 세련되고 능숙해 보였다. 손목언저리엔 명품들로 치장되었고 자신만만한 표정은 부(富)와 신분을 과시하는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40대 중년 부부가 우리테이블로 오더니 입장권을 보자며 “우리자리가 ‘47번R’ 석인데 자리를 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틀림없는 입장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가더니 예약담당직원과 함께 예약자료를 들고 다시 나타나 예약자 명단과 전화번호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의 예약자인 김OO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인이 우리 옆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동명이인의 예약 때문에 착오가 생긴 모양이다. 만일 뒤늦게 온 부부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어디론가 쫓겨 갈 판이었다. 늦게 온 이들이 어느 자리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이렇게 큰 행사에 오류가 생기다니, 씁쓸했다. 잠시 뒤 한 50여명쯤으로 추산되는 웨이터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출입구에서 쟁반을 받쳐 들고 질서정연하게 들어오는 모습은 군대의 열병식을 방불케 했다. 테이블로 내 오기 시작한 음식은 일반호텔 예식장 피로연의 양식수준보다 약간 높을 정도의 평범한 것이어서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뒤, 부티 나는 명품 남자에게 도우미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몸을 뒤틀며 아양을 떠는 모습에서 측은함과 비굴함이 느껴졌다. 이들은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인 두병을 주문하겠는데 신용카드결제가 되는가?” “카드는 안 되는데요” 왜 카드가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남자는 군 말없이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빼어들었다. 지갑 속엔 현금도 가득하련만 수표 한 장을 꺼내 도우미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이 후에도 거스름돈이 오간 흔적은 없었다. 이 사이 승용차가 너무 밀려 늦게 도착했다는 귀티풍모의 여인이 화사한 미소로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비로소 이들 일행은 모두 3쌍이 되었는데 전후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의 사이는 아마..... 주변을 둘러보니 40대에서 70대에 이르기 까지 부부동반으로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잠시 뒤 술병과 함께 나온 와인 잔은 뜻밖에도 10명분이었다. “같은 자리에 앉게 된 것도 큰 인연인데 같이 건배 합시다.” 라고 명품남자가 말했다. 우린 곁다리로 와인을 얻어먹는 셈이 되었다. 얼떨결에 10명 모두는 이들의 건배제의를 흔쾌히 받았고 술잔을 부딪치고 마시는 가운데 정담도 오갔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분위기를 반전시켜보려는지 명품남자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겠으니 영어로 통역을 하라”고 파트너 여인에게 주문하더니 다음과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독일에 여행간 어느 남자가 식당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려는데 독일어로 되어있어 의사전달이 어렵게 되자 갑자기 웨이터앞에서 바지를 벗어내려 은밀한 곳을 보여줬더니 웨이터는 알았다는 듯 돌아갔고 잠시 후 식탁에 내온 음식은 쏘시지 한 개와 감자 두개였다고 합니다.” 한바탕 웃음이 터지자 이 사람은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웨이터에게 바지 내려 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했는데 이번에 식탁위에 오른 음식은 고추 한 개와 메추리알 2개가 전부였다“ 나 옆에 앉은 여인은 흥겹게 이 말을 거침없이 통역했다. 잘은 모르지만 마치 자기 일 인양 깔깔대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와 몸짓은 해외체류 경험이 많은 듯 해 보였다. 외국인은 계면쩍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보수성향의 고루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졌으나 앞자리에 앉은 여인네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금 전 건배하면서 한 모금 마신 술이 몽롱하게 취해 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취하지? 이상하게 여긴 난 술병 딱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알코올 35도짜리 칠레산 와인이었다. 와인이 기껏해야 15도 밖에 더 되겠는가? 35도라면 이것이 와인이 아니고 포도주를 증류한 ‘브렌디’ 일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와인임이 문명했다. 달콤한 술이 너무나 부드럽게 목구멍을 통과했기에 순한 술로 여겼다. 과문한 탓에 이런 술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8시가 다 되어서야 무대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면서 밴드마스터의 현란한 몸짓이 경쾌한 리듬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 밴드마스터의 신나는 율동만 보아도 대번에 그 유명한 김정택 이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패티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특유의힘찬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진행자가 따로 없는 이 공연의 악단규모는 모두 13인조, 건반악기로 피아노1대, 키보드 2대, 영혼을 부른다는 타악기로 드럼1셑, 손으로 치는 큰북 모듬 1셑이 있고. 트럼펫 2개, 트럼본 1개, 테너. 엘토 섹소폰 각 1개, 전자 바이올린 1개, 기타2개 그리고 율동과 함께 빽하모니를 담당하는 젊은 아가씨 2명이 고정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간결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치밀한 구성으로 보여졌다. 이어지는 노래는 메들리 외국곡 ‘Some where my love Over the rainbow', ’가을을 남기고간 사랑‘, ’못 잊어‘, ’별들에게 물어봐‘ 등등 거침없이 불려지는 노래는 이내 객석의 분위기를 띄워 올렸고 곡이 끝난 뒤엔 김정택과 페티가 하이파이브로 손바닥을 맞추며 명컴비 임을 내 비췄다. 이어서 엔디윌리엄스의 'Moon River'.에 이어. .오드리헵번이 주연한 영화 주제가(곡명은 기억이 안남)를 부르려는데 장내에서 딸가닥 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여가수는 이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소음이 나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는 것이다. 다분히 명령조로 조용히 해 줄 것을 당부하는 모습에서 다소 교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9월의 노래’ ‘님은 먼곳에’ 에 이어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는 곡, 대중가요라기 보다는 ‘세마이 클레식’ 이라고 소개한 조은파 작사 박춘석 작곡인 ‘사랑은 생명의 꽃’ 이란 노래를 열창하고 1부를 끝냈다. 10여분 뒤 의상을 갈아입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다시 나타난 노련한 이 가수는 공연장 맨 뒤에 자리 잡은 S석 뒤에 출현하여 ‘징글벨’을 부르면서 중앙통로에 앉은 많은 관객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중앙무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친구여’ ‘아도르‘ ’빛과 그리고 그림자‘가 이어졌고 ’그대 없이는 못살아‘ 가 연주되면서 모두가 테이블위에 놓였던 종이컵 촛대에 불을 붙여 들었고 큰소리로 함께 소리쳐 불렀다. 페티가 무대 뒤로 사라진 뒤, 김정택 악단장은 주요 밴드맴버들을 오직 몸짓으로만 소개했고, 객석의 박수와 앵콜로 다시 무대에선 페티에게는 누군가가 보낸 꽃다발이 전해 졌고 이 꽃은 다시 김정택단장에게 건네졌다 . 정해진 프로그램은 이것으로 끝이 나는가 싶더니 길옥윤 작곡 ‘이별’을 피아노반주 만으로 부르는데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어서 ‘If you love me' 앵콜곡으로 '글로리아’를 부른 뒤 악단장의 제안에 따라 페티는 김정택의 피아노반주에만 맞추어 ‘초우’를 노래했다. 페티는 단장과 같은 의자에 앉아 불렀는데. 7순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는지 다리아픔을 숨기지 않았다. 공연을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진 그를 다시 끌어 내기위해 객석에선 박수와 앵콜을 연발했다. 악단장이 손짓하는 대로 상투적인 앵콜을 유도한 것이지만... 객석의 희망곡으로 ‘My way'를 선택한 그녀는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를 냉수로 달래면서 신중하게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자 열창했다. 그의 마무리 감사 멘트는 “그동안 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애정을 표시해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을 마치고 관객과 함께 부른 ‘서울의 찬가’를 끝으로 1시간 40분의 공연은 막을 내렸다. 이런 공연은 한번만 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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