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밤중에 내 옆지기는 TV 드라마를, 나는 신문을 무심코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TV 드라마에서 여자 텔런트의 이런 대사가 내 귀에 쏙 들어왔다. "앙드레 지드는 자기 부인을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가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었고 그의 육체적 욕망은 오직 거리의 여인들을 통해 해결했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게 되면 혹시 이 '지드'의 부인처럼 되는건 아닐지 걱정되는군요" 매우 충격적인 이 대사를 듣고 다음 날 아침 이 '앙드레 지드'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검색 결과 '앙드레 지드'가 거리의 여인들과 잠자릴 같이 했다는 기록은 없고 결혼 전 젊은 시절부터 동성애에 빠져있었다는 기록이 거의 전부였다. 부인이 죽을 때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그의 외동딸도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닌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알려졌다. 오늘 글 제목이 '양귀비의 비밀' 인데, 뚱딴지 같이 이 글을 먼저 올리는 이유은 '앙드레 지드'를 검색하던 중 어느 블로거가 올린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흥미롭던지..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 역사상 미인으로 꼽히는 두 뇨자가 있슴다. 물어보나마나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 동양에서는 양귀비가 꼽히는데 얼굴 값 한다는 말이 꼭 들어 맞을 만큼 두 뇨자의 일생 또한 기구하기 짝이 없죠. 오늘은 우선 양귀비(719-756)에 대해서.....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엔 장안(長安)이 있슴다. 인구 100 만의 당시 세계 최대의 국제적 도시임다. 몽고, 한국, 일본, 아랍, 러시아 등에서 귀화한 외국인만 해도 1만 여호에 달하는 거대도시로서 당나라의 수도임다. 이 도시에서 황제인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시작됨다.
현종은 28세에 즉위해서 "개원의 치"라고 일컬어지는 훌륭한 업적을 쌓고, 당근 당나라는 사상 보기 드문 풍요와 윤택이 넘치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됨다. 그런데 현종이 60세 가까워오자 슬슬 정치에 싫증을 내고 속세의 책무를 잊어버리고 훌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게 됨다.
그도 그럴 것이 현종은 마누라를 잃어 옆구리가 허전했었고, 당시 유행했던 도교의 영향으로 세상 모든게 심드렁 해 보였던 때 였슴다. 궁중에 지천으로 깔린 미녀들이 아양을 떨어도 소 닭 보듯 봤던 검다. 이 때 만난 운명의 여인이 바로 양옥환(훗날 양귀비)였슴다.
그런데 이를 우짭니까!!! 양옥환은 현종의 며.느.리....였던 검다.
그러나 양옥환에게 눈 멀은 현종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퉤퉤...일단 침부터 바르고 접수함다. 이날 양옥환의 풍만한 몸뚱아리를 품에 안은 현종은 입이 찢어졌고 "짐은 천하의 至寶를 얻었노라" 고 더 없이 기뻐함다. 이때 옥환의 나이 22살, 현종은 56살.......
양옥환의 교태에 얼이 쏙 빠진 현종은 그녀를 아예 후궁으로 앉히려고 마음 먹슴다. 그러나 아무리 황제라 해도 며느리를 후궁으로 들어 앉히려니 열라 쪽 팔림다. 그래서 이 방면에 도사인 박노항 원사의 짱구를 빌려.....작전을 수행함다.
1단계 : 양옥환을 비구니로 맹길어 아들과 이혼시킨다. 2단계 : 일단 그녀를 절에 고이 꼬불쳐 둔다. 3단계 : 아들에게는 새 여자를 부킹해주고 양옥환을 궁으로 데려 온다.
후궁으로 데려온지 몇해 안돼 양옥환은 일약 "귀비"로 파격승진함다. 당시의 후비제도를 잠깐 살펴보면 황후(본부인) 1명, 부인은 귀비,숙비,덕비,현비의 4명..... 그 이하 잡동사니 포함해서 총 122명이 후비명단에 오르고 첩들은 부지기수죠....많을 때는 4만명에 이를 때도 있었담다. 아무튼 황후는 죽고 없었으니까 서열 2위인 양귀비가 황후노릇 하는 검다.
도대체 양귀비가 뭐이 그리 대단하길래 어케 중국 땅 그 넓은 천지의 여자들을 제치고 현종을 꽉 잡았을까? 중국 4대 미인이라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이중 양귀비는 나머지 셋에 비해 좀 쳐진다고 함다.
양귀비는 요즘 기준으로 친다면 뚱땡이에 속함다. 40-28-40 정도에 50 kg 안팎으로 보고 있는게 정설임다. 正史에도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고 기록 돼 있으며 그녀의 라이벌인 매비는 양귀비를 일컬어 "살찐년"이라 욕했고 그녀 스스로도 "궁중에서 나를 들 자가 누구냐?"라고 말하곤 했었슴다.
그러나 이게 현종의 마음을 움직인 거였슴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몸매와 백설기 처럼 희고 보드라운 피부, 인절미 처럼 쫀독쫀독한 감촉에서 일단 점수를 왕창 땄던 검다.
그녀는 오리지날 중국산이 아니라 페르시아계 계통이라서 약간 서구적 용모에 살결도 희고 목단향의 체취도 독특했다고 함다. 클레오파트라는 동양적 외모에 갈색피부, 이국적 체취였다고 하니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이국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게 돼 있나 봄다.
거기에 더하여 당시 당나라 미인의 기준인 三白(하얀 이마, 코, 턱) 과 三紅(붉은 입술,뺨,손톱)이 양귀비는 화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고 함다. 특히 三白은 요즘 말하는 T-zone이라 해서 지금 뇨자덜도 얼굴선 또렷이 보이기위해 기를 쓰고 밝게 화장하는 부위 아님까?
또한 그녀의 테크닉 ....... 현종때에는 후궁에 귀아원(貴牙院)이라는 성애의 기교를 가르치는 교습소를 두었는데 양귀비는 이곳의 수석 졸업생이었다고 하니 말 다한 거죠. 그 뿐임까. 노래, 춤, 비파의 명수에다가 현종의 마음을 미리 읽는 명석함까지 갖추었으니 현종이 안 넘어 갈 재간 있겠슴까?
그녀의 비밀은 또 있슴다. 바로 그녀의 발....... 채 10 cm도 안 될 정도로 작아 손바닥 위에서도 춤 출 정도였다고 함다. 10 세기 때의 시인인 이욱이 궁녀의 발을 작게 만들어 황금 연꽃대좌에서 춤을 추게 한 것이 시조라는 "전족"이죠.
따지기 좋아하는 중국 넘덜은 전족에도 "三貴의 美"라는 품계를 매겼슴다. 비(肥) : 지방이 있어서 윤기가 흐를 것 연(軟) : 부드러워서 살집이 좋을 것 수(秀) : 그 모양이 아름다울 것.......이 세가지를 양귀비는 갖춘 검다.
전족은 허리에 힘을 주고 걷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자연히 강철같은 성기와 성기능강화를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남자덜의 쾌락을 위한 잔인한 학대라고 볼 수 밖에 없슴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과일중의 과일"이라는 여지, 혹은 여주(중국식당에서 나오는 리치)였슴다. 2천 km 떨어진 남방에서만 자라는 이 과일을 공수해 오기 위해 현종은 5리 마다 파수대를 세우고 10 리마다 숙소 마련하여 밤을 낮 삼아 말과 사람을 바꿔가며 여지를 나르게 했슴다.
여지(리치)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섬유질 많고, 칼로리 적은 다이어트 음식이람다. 그녀는 또 탱글팽팽한 피부를 위해 닭날개를 즐겨 먹었는데 닭날개에는 "콜라겐"이라는 성분이 이빠이 있다고 함다. 최진실이 눈 밑 검은 그늘을 없애기 위해 "콜라겐" 주사를 맞았잖아요... 바로 그런 효능임다...........어쩐지 남자에게 안 먹이더라더니.
양귀비에 빠진 현종이 정사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하자 (어느쪽 정사가 문제지?) 변방 주둔사령관인 안록산이 쿠데타를 일으켜 장안으로 밀고 내려옴다. 현종이 피신길에 나서는데 수행하던 장병들이 데모를 하며 꼬장을 피움다. 모든게 다 양귀비란 여우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양귀비를 처단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겠다고 아우성임다.
풍전등화의 위기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그녀는 짧은 생을 마감함다. 이 때 그녀의 나이가 38세.... 훗날 현종은 생애 내내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하루종일 눈물속에서 그녀를 그리워 했다고 함다.
여담하나.... 지금 양귀비의 무덤은 흙이 아닌 돌로 돼 있슴다. 원래는 흙으로 돼 있었는데 "그 무덤의 흙을 먹으면 피부가 곱고 희게 된다는 속설"을 믿고 사람덜이 마구 흙을 퍼가는 바람에 급기야 무덤이 없어질 판이 되자 문화재당국이 부랴부랴 벽돌로 분묘를 맹긴거라고 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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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꿈꾸지 않는 아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 글쓴이 : 꼬마산타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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