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의 유적 장수왕릉을 보면서
705년 역사의 고구려 유적이 점차 중국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장수왕릉이라고 부르는 이 능을 중국에선 그냥 무덤 坟(분) 자를 써서 장군분(將軍坟)으로 부릅니다.
고구려 28대 장수왕은 96세까지 살았다 해서 장수왕이라 이름붙였다는데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고구려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
한편,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은
압록강 중류를 중심으로 일어난 고구려는 1세기 태조왕에 이르러 기본적인 국가체제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동옥저·동예 지역을 복속시키면서 경제적 기반을 확보했고, 중국의 군현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6세기말부터는 오히려 수와 당의 공격을 계속 받았고,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위기에 처했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국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초기 사상은 선교(仙敎)였으나 뒤에 불교·도교와 들어와 결합하였다. 고구려의많은 승려들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이름을 떨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소수림왕대에 이르러서는 태학을 세워 유교를 교육하였다. 대표적인 미술 유산으로 고분벽화가 있다.
집안시의 민속문화 연구센터에서 작성한 아래 안내문은 중국 당국이 만든 건데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많습니다.
능으로 오르는 입구에 장수왕을 지칭하는 장군분(將軍坟;장군묘) 의 안내 비석이 보인다.
수양버들처럼 느러진 느룹나무를 처음 보는지라 ...
능으로 올라갑니다
다음 글은 여행사에서 작성한 안내문입니다.
장군총(장수왕릉)
413~490 년 사이에 축조된 고구려의 대표적인 축석묘로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입니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한 형태의 능응로 집안시 북쪽 5Km 떨어진 동구 고분군에 있으며 고구려의 비약을 상징하므로 '동방의 금자탑' 또는 '동방의 피라미드' 라고도 불립니다. 장방형 화강암 벽돌을 매단 안쪽으로 쌓아 높이 12.4m , 각변 길이 31.6m의 7단 계단식 사각형 피라미드 형태로 만든 능입니다.
집안에 남아있는 1만2천여개의 묘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능으로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었으며, 길이가 5.7m 인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100 여 개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정면은 국내성을 바라보는 서남향이며 네 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이 53도로 북동쪽에 있는 백두산 천지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석축의 무너짐을 방지하려고 기대놓은 돌덩이들
원래 1 면에 3 개의 돌을 기대놓았는데 중간에 한 개가 없어져 석축이 무너지려고 한다
장수왕릉 뒷편에 장수왕의 어느 왕비로 추정되는 작은 묘가 또 있다.
허물어진 곳이 많으나 관리되지 않고 있다
석축묘 꼭대기 공간에는 관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
쌓은 돌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석축 변 끝부분을 L 자 형으로 깎아 그 위에 돌을 쌓아올렸다.
경내에 심어놓은 설탕단풍나무, 캐나다 국기에 그려져있는 나뭇잎이 설탕단풍나무 잎이다.
<자연박물관 글>
나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려 우리돈 2만원 짜리 광개토태왕 비석의 작은 모형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비석 전문(全文)과 우리말 번역문을 넣어 만든 유인물도 받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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